안전지대의 한복판, 대형 스크린에서 반짝이던 광고가 멎습니다. 불길하게 깜빡이던 화면 위로 《긴급 속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른 것은 낯선 아나운서의 얼굴입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대본을 몇 번 고쳐 잡은 뒤 가까스로 말합니다. "최강의 인류들로 구성된 특수 전투 부대, AOC는……." "오늘 자정, 본부에서 A급 범죄자들의 공개 처형식을 거행합니다."
먹먹하게 흐린 하늘, 먼지처럼 흩날리는 눈송이,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추위. 당신은 피 웅덩이 속에서 깨어납니다. 어깨의 벌어진 상처에선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며,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끔찍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866……니다. 안심…시오, 국민……." "안심, 안심하십시오. 안전지대의 최전방은 최강의 인류에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당신은…….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영웅에게 걸맞은 최후를 준비해두었습니다.
평화가 도래했다. 신문과 뉴스, 인터넷 기사를 구별치 않고 모든 매체에서 도밍게즈의 평화를 떠들었다. 2053년 새해의 길거리는 유난히 사람으로 북적였다. 멸망을 넘어, 새로운 계절.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못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신사에 들리고 기도를 올리고, 골목을 뛰놀고, 벚꽃을 즐기며 삶을 찬미했다. 그러니까, ‘도밍게즈, 역사상 최악의 지진 발생!’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